참 감회가 새롭다.
이런 공간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이 일기장.
2013년 11월 초 한국에서 떠나기전 작성하기 시작했으니 어언 3년이 다되어 간다.
이 다이어리를 쓰게된 이유 크게 두가지를 떠올려보자면....
첫째, 목표 달성하는 과정에서 외롭고 힘들어할 내자신을 위로하고 또한 긴장의 끈을 놓지않기 위해.
둘째, http://bosdiary.tistory.com/
위 주소의 블로그 주인분 덕에 용기를 얻었기에 나 또한 다른사람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마음에.
정도 랄까?
참고로 나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목표는
외화를 많이 번다거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킨다는
1차원적인 것이아니라 해외에서 생활을 하며 기술을 배워오는 것이
구체적인 목표였고 호주로 떠나기 1년전부터 꾸준히
어떤 기술을 배워올지, 어느 도시로 떠날지 고민하다가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결정했고 그곳에서 바리스타가 되는것을 목표로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오랫동안 다이어리를 쓰지않던 사이 내가 원했던 목표를 달성했고,
1년가량 계획했던 초기 예상보다 훨씬 오랫동안 호주에서 생활을 이어갔으며
지금은 어느새 한국에 돌아온지 1년 반이 다되어간다.
아무튼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왔고, 너무나 많은 일들이 내게 찾아 왔었다.
요컨데 호주에서의 첫 6개월은
경험이라는 내인생의 자산중 결코 잊지 못할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단기 쉐어들을 전전긍긍하며 Donovans 라는 로컬 레스토랑에 정말 운좋게 취업하게되었고,
쉬프트가 고정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호주에서의 안정적인 정착을 할 수있게 되었고,
Matthew와 Adella 누나 등 2년 가까이 내게 큰 위로와 의지가 되어준 사람들을 알게 될 수있었다.
첫 6개월이라는 적응의 시간을 거친뒤,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더 호주에서 보내게 될 줄이라고는
이 다이어리를 처음 쓰게 되었을때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지..
난 호주라는 나라가 왜 사람들이 기회의 나라라고 하는지
온몸을 다해 느낄 수 있었다.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난뒤 한달 가량 쉬게 되었다.
손가락 통증도 너무 심했고, 또한 비자문제상 한곳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할 수도 없었기에.
돈을 많이 모으진 못했지만 한달이라는 시간은 버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달동안 시티에 있는 카페도 돌아다녀 보고,
군대 삼촌군번? 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윤영이가 호주에와서 정착을 도와주게 되었고,
하우스 메이트로써 알게된 Matthew를 포함해 윤영이랑 셋이서 가까워 질 수있었고
한마디로 친구들이랑 현지인처럼 어울리며 지냈다고 하면 될 것같다
그렇게 손사레 치던 소주도 마셨으니...호주 생활이 많이 편해진셈이었지..
뭐 그렇게 한달을 쉬면서 지출만 생기고 수입이 없다보니
또 다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었다.
원하던 바리스타 잡을 구하기 위해 아마 엄청 발품을 팔았던 것 같다.
SEEK, Gumtree 등.. 아마 레스토랑 구할 때 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그런데 일자리 구하기란 정말 쉽지가 않았다.
Crown계열사 (크라운 카지노의 그 크라운) F&B 쪽 인터뷰도 봤었고,
또한... 레스토랑에서 헤드 쉐프에게 받은 추천서가 있었기에
다른 레스토랑에도 면접을 볼 수 가 있었다.
사실 그곳에 잠시 취업이 됬다고 하는게 정확할거다.
Chaple St.에 있는 Mr. Miyagi(이하 미스터 미야기) 라는 퓨전 일식 레스토랑..
그곳도 사실은 로컬에서 유명한 다이닝중의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도노반스라는 곳의 레퍼런스가 강했는지 책임 쉐프가 직접 전화해서 인터뷰 보고
이틀간의 트라이얼을 거쳐 일을 하게 될 뻔? 했던 곳이다.
아참 그에 앞서 중간에 이사했던일을 먼저 꺼내야 될 듯 싶다.
뭐 핑계라면 핑계이겠지만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경제활동을 못하다보니 살던 집의 렌트비(300불 가까이 되었던걸로 기억..)가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마침 살던곳 바로 근처에 한인이 운영하는 쉐어를 찾을 수 가있었다.
방 하나를 나눠써야하는 룸쉐어 였지만
살던 집보다 반값이나 하는 렌트비, 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뷰가 너무 좋았기에?
그렇게 이사 한곳은 방이 총 세개, 각 방마다 두명씩 거주하는 곳이었고
그곳을 통해 망원동 피제리아 오너 동진이형, 정치가가 꿈인 준혁이, 지금은 애아빠가 된 성찬이,
스웨덴친구들, 영국인 한나, 프로페셔널 쉐프 봉수 등등을 알게 될 수 있었다.
그집은 참...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인연들을 연결해준 곳이라고하면 될듯.
심지어 그 쉐어를 운영하던 분은
다름아닌 워홀 초창기 Chaple St. 쪽 Aini라는 카페에 이력서를 내러 갔을때 만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흔쾌히 매니저를 설득해 내게 트라이얼 기회를 제공 해주었던 그 한국인이었다..
What a small world!
내게는 허다 했다..정말 많았다 그런 만남들이 그래서 호주가 기회의 나라라고 생각하게 된 것 일수도..
아무튼 내게는 St Kilda에서 지낸 마지막 집이 기도 했고, 추억이 참 많이 깃든곳.
아마도 내가 꾸준히 일기를 썼더라면 재밌는 사진과 스토리들이 가득했을거라는건 두말하면 잔소리.
설명이 길어졌지만 그렇게 부랴부랴 두번째 집을 이사하고도
일자리는 잡아야겠고, 해서 졸지에 다시 레스토랑 키친핸드 잡을 찾게되었는데..
나는 정확히 기억을 한다 5월 29일
미스터 미야기에서 이틀째의 트라이얼이 끝나갈때쯤 문자가 한통왔는데
다름아닌 카페...
다음주 월요일날 트라이얼을 올수 있겠냐는 문자였다.
이미 미야기에서는 이틀동안 쉐프들과도 가까워졌고 책임 쉐프는 내게 풀타임 잡 오퍼까지 한 상태였다.
하지만 난 이게 두번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고 느꼈고,
풀타임잡 오퍼를 거절한채 아무것도 결정된것이 없는 트라이얼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하고 난뒤에
책임 쉐프에게 정말 치욕적인 욕도 들어가면서 레스토랑에서 쫓겨나오듯 했지
이틀간 트라이얼 돈도 다 못받아서.. 뭐 사실 그들 시간을 낭비한건 사실이니
나도 이제는 조금 미안하긴 하다만
그렇게 우여 곡절끝에 시작하게된 첫번째 카페잡!
Southbank에 있는 Scuttlebutt Espresso.(이하 스커틀버트)
홍콩 부부가 오너였고, 매니저로는 호주인 Jemma가 있었다.
일주일동안 트라이얼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사실 트라이얼 당시의 아무것도 기억이 안난다.
그냥 시키는대로 정말 열심히 일하고, 빨리 일을 배우려고 많이 노력하기도했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 알게되었지만
젬마라는 매니저가 내 이력서를 확인하던중 도노반스 레퍼런스를 보고 즉흥적으로 뽑았다고...
하지만 내 노력이 없었던 건 절대 아니다.
커피를 다뤄 본적이 없지만 6개월동안 나는 여러 카페를 다녀보며
메뉴 구성이 어떻게 되있는지,
주문을 받을때 사용하는 문장이라거나 등등.. 발품 팔면서 시간을 그냥 허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첫 카페는 Hockingstuart라는 제법 큰 공인중개사 사무실 근처에 있었고
그곳을 포함해 사우스 뱅크쪽에 있는 기타 사무실에서 일하는 단골들을 가지고있었다.
그러하기에 아침 러쉬타임에는 머리, 눈, 몸 뭐하나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사실 첫카페는 카페 전문점이라 하기엔 부족한 곳이었고.
한국에서처럼 찍어내기 바쁜 커피를 추출하는 곳이라고 하면 적당한 표현이지 싶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기위해 내가 제일 먼저 애쓴건 다름아닌 주문서를 보고
에스프레소 샷을 막힘없이 뽑아 내는 것이었다.
초반 1~2개월은 나는 그저 그라인더를 통해 커피를 분쇄하고, 포터필터에 담아
샷을 추출해 스팀을 담당하는 오너 바리스타인 Sarah 사라 에게 전달하는 것 이었다.
여담이지만 사실 오너 부부들은 영어에 자신감이 없다 해야하나?
영어를 잘 안쓰려고 하는 경향이있었고, 그래서 매니저인 젬마랑 많은 다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인 Lesly 레슬리 는 주방에서 요리를 담당했고
그래서 주로 홀에선 나와 젬마 그리고 사라 셋이 일을 했었다.
대부분은 테이크어웨이 커피 손님들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브런치와 샌드위치를 먹고가는 Dine in 손님도 많았다
오너 쉐프였던 레슬리의 음식은 좋았던 편이었다.. 특히나 직접 만든 숩 들은 아시안 식이지만
서양인들도 늘 만족해 했던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영어에 강점을 가진 젬마가 캐셔와 샌드위치등을 담당했고,
나는 음료 주문서를 보고 샷을 추출하거나 티, 쥬스등을 만들었고,
사라는 밀크 스티밍을 치면서 손님들에게 전달해주는 일들을 주로 도 맡았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주문서를 보고 바로 샷을 뽑아야 했기에,
처음 고용이 된이후 몇일간은 당일날 주문을 받은 주문서들을 그대로 집에 가져와서는
이미지 트레이닝하는데 사용하곤 했었다..
뭐 그렇게 적응을 하기 시작했고...
매니저였던 젬마와의 관계를 얘기해보자면 예전에 도노반스의 리차드처럼
처음부터 원만한 관계를 갖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워낙 사라 그리고 레슬리랑 소통이 잘 안되고 끊기는게 다반사 였는지
그걸 내게도 적용해서 그랬던걸로 기억한다.
나마저도 영어가 안될거라 생각했던거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젬마와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 공통분모가
오너들이었기에 가까워 질 수밖에 없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다 결국 젬마는 그곳의 오픈 멤버였음 에도 불구하고 떠나게 되었고
그렇게 카페의 매니저가 공석이 되어버렸다.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오너와 매니저간의 불협화음이었고,
그중에 제일 큰 이유는 아무래도 유일하게 영어로 대화하는데 있어
단골손님들과 대화를 길게 하는게 매니저인 젬마였는데
사라랑 레슬리는 그걸 탐탁치 않게 보았다는것...
뭐 아무렴 어찌됬든 그이후로 매니저를 뽑지 않게되었고,
졸지에 약 4달간 내가 매니저아닌 매니저 역할을 다하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같은 동양계여서 오너들이랑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데,
내가 그들과 관계가 멀어지게 된건 바로 커피 때문이라는 것...
카페에서 공급받는 커피 원두는 Allpress 라는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있는 로스터리였고,
그곳을 통해 나도 제대로된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트레이닝을 하는 말을 빌려보자면
이상적인 추출시간은 25~29초 내라는것.
하지만 사라는 추출시간이 거기에서 1~2초라도 어긋나면 그것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었다.
나는 이상적인 추출이기에 어느정도 융통성을 가져도 된다했지만,
사라는 그것을 용납하는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부터 였을거다, 내가 커피에 대해 기계처럼 뽑는게 아니라
무언가 과학적이고 실험적인게 있을거라고 호기심을 가지게 된것이...
그런 고민은 아무리 내가 오너들에게 설명을 해도 통하지가 않았기에
굳이 스트레스 받지않으려 흘려보냈던걸로 기억한다.
새로 뽑은 직원이 호스피탈리티에선 전혀 경험이 없는 18세의 어린 친구이거나
나보다 영어에 더 자신이 없는
뭐랄까 준비가 덜 된 친구들이었고,
그럴 수록 내가 하는 일들이 많아져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10월중 한주를 쉬기로 했었고,
그 한주동안 멜버른에만 있었던 내자신에게 뭔가 보상을 해주고싶어
Cairns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케언즈 이야기도 참 많은데...
이러다가 회상 일기 형식으로 다 써야 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어쨌든.. 첫 카페에서 6개월을 다 채웠고....
자 여기서 어떻게 1년을 더 채웠냐 궁금해 할 분들도 있을거라 본다.
나는 솔직하자면 호주인들이 지극히 싫어하는 "불법"으로 1년을 연장 할 수 있었다.
2014년 8월쯤?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하며
세컨비자 신청을 감행 했었다..마음이 아픈 스토리지만....
어찌 됬든,
지금은 단속이 심해져서 불가능한 방법으로 알고 있다.
*호주에서 적법하게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100일 정도 되는 시간을
농장 그리고 공장과 같은 정해진 환경에서 노동해야하고 그것을 증명해야만 신청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론 내게 다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재발급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농장에서의 생활도 겪어 보고 싶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런 경험또한 평생에 쉽게 찾아오는 시간이 아니기에...
세컨 비자가 운이 좋게 나오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2014년 6월부터 12월까지 첫카페에서의 근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12월 부터 또 다시 한달간 나는 쉬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앞서 얘기한 것 처럼 나는 호주에서 기막힌 인연들과 기막힌 재회를 자주 하곤 했는데,
10월 즈음 같이 살던 준혁이와 세인트 킬다 주변 카페 투어를 하다가
어느 한 카페에서 내 중학교 동창이던 Baek 선웅(a.k.a 말)이를 15년만에 마주 칠 수 있었다.
예전에 듣기로 호주에서 지낸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멜번 거기에다
세인트 킬다 였을 줄이야..
선웅이는 레스토랑 매니저로 주로 일을 했고 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지금은 쉐프로 일을 한다고 알고 있지만.
아무튼 당시 한달간 쉬면서 선웅이를 통해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호주에서 살아가는것 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앞서 1년간은 나혼자 만들어 왔던 거라면
사실상 나머지 1년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고 얘기하고 싶다.
다시 카페라는 본론으로 돌아와,
두번째 카페는 St Kilda Rd에 위치한 Slater St. Bench.(이하 슬레이터)
나는 호주에서의 교통수단이 주로 자전거 였는데 슬레이터는
내가 스커틀버트로 출퇴근 할때마다 굉장히 궁금해 하며 호기심을 키우던 카페 였다.
생긴지 얼마 안된 느낌의 인테리어에 뭐랄까 유리창사이로 느껴지는 전문가다운 모습들?
2014년 11월 28일 으로 기억한다.
내가 슬레이터에 처음 방문하던 날.
나는 스커틀버트에 일하던 6개월동안 Vans의 운동화 한켤레만 신고 일을 했는데
늘 그 신발은 분쇄된 커피가루들이 덮여있었다.
오너 바리스타였던 Jared 제라드 가 손님으로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내게 건내던 인사는
굉장히 특별했다.
너 신발 보아하니 바리스타인거 같은데 원하면 커피머신이랑 만져봐도 된다고..
난 그때 뭐랄까 신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였다.
그게 인연이 되어 두번째, 세번째 방문을 할때에도 나를 기억해줬고
한달동안 쉬면서 선웅이랑 커피마시러 놀러간 적이있는데
내가 문득 너희 사람구하냐고 물어보니 마침 사람 필요하다길래
그게 인연이 되어 거기서의 근무가 시작되었던 걸로 기억을한다.
그래서 나는 멜번으로 커피를 배우러 간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장 큰 팁으로 한 카페만 주구장창 다니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기도 하다.
슬레이터는 오로지 커피만 판매하는 카페였다.
물론 간단한 디저트들도 있었지만.
당시 세명의 공동 오너가 운영하던 공간이었다.
싱가폴계 Franky 프랭키, 앞서 말한 호주인 제라드 그리고 이탈리아계 호주인 Josh 조쉬.
그리고 바리스타로는 태국계 Feb 펩..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Nick 닉 그리고 Leo 레오 등등 많은 능력있는 바리스타들과 같이
일하면서 배운 내게는 정말 레벨업에 엄청난 도움을 준 카페였다.
Specialty Coffee.
슬레이터를 통해 배우게된 내겐 생소한 커피의 한 분야였다.
트라이얼을 한창 할때 제라드가 내게 보라고 알려준 영상은
Ben Kaminsky 벤 카민스키 의 espresso why you hate it how to fix it.
커피에 대해 다가가는 자세가 그영상을 통해 180도 바뀌게 되었다.
사실 이때부터 나는 많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커피에 대해 공부할 수있는것이 많아지기도 했고, 또한 내가 가지던 호기심들을
하나 둘 풀어나가는게 즐거웠지만.
나보다 경력도 뛰어나고 레벨차이도 많은 바리스타들 사이에서
짧은순간에 배우려니 부담감이 상당했었다..
거기에다 제라드 마저도 내게 고용에 앞서
몇가지 요구 한 것이 있었으니,
조금더 원활한 의사 소통 스킬을 가질 수 있게끔 공부하고,
오너들이 원하는 커피를 다루는 레벨에 다가서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데
우선 3개월을 지켜 보겠다며..
뭐 그렇게 내 새로운 도전이 시작 되었던 것같다...
정말 많은걸 배웠고, 느끼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인생에 큰 기회임에 분명했다.
그러던 중 1년동안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던
한국인 바리스타들을 하나 둘 알게 되었는데...
현재 한국에 Dukes Coffee(이하 듁스커피)를 수입하고 있는 GPO의 이기훈 대표, 그리고 호주에서도 알아주는
로스터였던 BW..
이 둘을 통해 한국인 바리스타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다.
나는 온갖 영어로 되있는 커피에 막히는 부분도 많았고..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 그때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 던 것 같다.
2015년 Melbourne International Coffee Event 맞나? 모르겠다..
아무튼 한국으로 치면 카페쇼 같은 박람회 같은..
그런 박람회에 이벤트로 포함되어 있던 각종 커피 관련 대회에
한국인 바리스타들은 이미 유명세가 넘치고 있었다..
뭐 그 해에 라떼 아트 챔피언이 한국인으로 최초로 호주 대표를 하게된 분이었으니..
한국인이라는게 정말 뿌듯하고 정말 그들에게 많은걸 배울 수 있었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뭐 각설하고.. 한편으로는 커피로는 너무나 많은 정보들을 짧은 순간들에 담기란
내겐 조금 벅찬 일이였던 것같다..
아무튼
바리스타 커뮤니티를 통해 좋은 친구를 한명 사귀게 되었고 그친구를 통해
많은걸 배웠고, 도움도 받고, 상처도 주었고...
사실 그때부터나는 나도모르게 많은 것을 그냥 자연 스레 내려 놓고 지냈던 것같다.
제라드와 약속한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을때 슬레이터는 580 Bench 라는 2호점을 내게 되었고.
나는 2호점에서도 열심히 일을 했지만,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바뀌게 되었고...
동시에 한가지 악재가 겹치게 되었다.
바로 살던 집이 갑자기 공중 분해 되었다는 것.
한인들이 운영하는 쉐어들은 대부분 법에 어긋난 구조가 많은 편이다
내가 지내던 집도 그중에 하나였고, 운이 없게도 단속에 걸려서
다른집을 알아볼 시간조차 거의 없다 시피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사귀던 친구의 도움으로 다행히
시티에 있는 아파트를 아예 렌트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St Kilda를 떠나야 했었다..
생각치도 못했던 일들이 연속적으로 생겨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옆에서 도우려 하는데도 나는 마음이 다른곳에 가있느라
참 바보같은 행동들의 연속으로 상처를 준게 나는 지금도 너무 미안하기만 하다..
아무튼
그후로 시티에서 지낸 기억들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고
이후로도 여러 카페를 옮겨 다녔지만.
어찌 어찌 좋은 인연들 덕분에
다양한 곳에서 일도 하고, 호주에서의 생활도 이어갈 수 있었던 것같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라서 내용들을 자세히 적을 수 없다보니
내용이 너무 갑자기 흘러가 버렸지만,
그만큼 나머지 2015년을 정신없이 지냈고
세컨비자마저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게 되 버렸다..
호주에 계속 거주하고 싶어 학생비자를 신청한 상태로 2년만에 한국에 복귀하게 되었지만
비자를 취소하고 몇달뒤에 관광비자로 호주에서 2달을 거쳐
듁스커피를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 보자는 제의를 받아
한국에 아예 돌아올 수 있게 된 것같다.
듁스커피에서의 처음 5달 동안은 참 좋았지만
내가 너무 많이 부족했음을 이제는 느낀다...
최근 커피를 안하겠다는 글을 SNS에 올린후 나름대로 커피를 그만 뒀다 생각했지만,
이 일기장을 발견하고 나니, 뭔가 내가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할까...
사실 나는 지금 다시 커피계로의 복귀를 염원하고 있는 중이다.
이 일기장을 처음 만들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성장할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는데..
물론 호주에서 있었던 시간들이 행복했지만,
나는 내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결국엔 내가 선택한 길을 통해서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이니깐.
약 2년간 일기를 안쓰다보니 본론이 너무 길었다,
되돌아보면 일기를 매일 쓰던 당시 나는 1시간정도 소모하면서도
뭐랄까 미래의 내자신에 대해 궁금해 했었기에 그냥 일기 쓰는게 재밌었던 것 같다...
과거의 내 자신에게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래도 격려해주고 싶다..
잘 버텨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ps. 커피를 배우기위해 호주로 떠날 목적으로 이글을 찾게 된 분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계시다면
인스타그램 Seitopau 로 다이렉트 메세지 남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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